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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바보야, 정책은 ‘넛지’야”…실패한 정책, 안심전환대출

오피니언 입력 2019-10-10 17:57 수정 2019-10-17 15:48 이아라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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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 동일한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두 배로 큰 상실감을 느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차드 세일러는 그의 책 <넛지(Nudge)>에서 ‘손실기피(Loss Aversion)’라는 인간의 행동편향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잃었을 때 느끼는 처참함이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의 두 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최근 안심전환대출 논란은 정부가 정책을 ‘넛지’로 활용하기는커녕 실패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세일러는 책에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단어 넛지를 사용했다. 넛지로서의 안심전환대출은 멀리 보면 아파트 매매를 실거주 목적으로만 하라는 것, 그러니까 부동산을 투기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가까이 보면 가진 현금을 활용해 대출을 최소화해서 9억 이하의 집을 산 것인데도, 대출 원리금을 갚기가 힘든 사람들에 한해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단기적 관점에서 정부는 안심전환대출이라는 정책을 넛지로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 안심전환대출이라는 ‘인심’을 쓰면서도 국민으로부터 온갖 쓴소리만 듣고 실익은 못 챙겼다는 것이다. 9억 아파트까지 신청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대출자들의 기대감은 부풀려놓고 뚜껑을 열고 보니 2억 초반 언저리에서 끊겼다. 선심성 카드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9억’ 신청대상을 내세웠다는 시각도 있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정책을 내놓은 정부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정부는 수요 예측에 대실패했다. 엉터리 수요예측으로 탈락자들의 허탈감만 커졌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집값 9억원 이하로 정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인데, 말 그대로 변명일 뿐 신청자들 약만 올려놨다.
 

그렇다고 장기적 관점에서 넛지로 활용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안심전환대출은 이번에 처음 나온 정책이 아니다. 4년 전에도 정부는 안심전환대출 정책을 시행했다. 뜨거운 호응 덕에, 대출한도 20조원은 일찍이 소진됐다. 연장판매를 통해 규모는 34조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안심전환대출 규모도 20조원. 마찬가지 뜨거운 반응으로 한도가 소진되자, 정부가 한도를 늘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 이유도 과거 그런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했다가, “대출금 깎아준다”고 했다가, “대출 금지!” 엄포를 놨다가 다시 “대출금 깎아준다”고 한 셈이다. 부동산과 대출을 대하는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은 없다. 이렇게 되면 경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아 빚내서라도 집 사면, 언젠가 정부가 깎아주겠지!’
 

손해 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앞뒤로 대출은 막아놓은 상태에서 이미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의 이자는 깎아주겠다니. 집 사볼 꿈조차 꿔보지 못한 2030 세대는 허탈하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보유한 가구주는 10명 중 6명에 불과하다. 무주택자들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2%대 후반으로, 1%대인 안심대출보다 훨씬 높다.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이미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으로 대출을 받고 비싼 이자를 감당하라는 건가.2015년 안심전환대출 첫 시행 때는 소득 자격조차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연 소득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들도 저금리 안심전환대출로의 환승에 성공했다. 안심전환대출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넛지로 작용하지 않은 정책은 잘못 설계된 넛지가 아니라, 애초에 넛지가 아닌 거다. 이리저리 때마다 갈지(之)자를 그리는 정책은 예산은 예산대로 쓰면서 시끄럽기만 할 뿐 정책적 효용은 없다.  /이아라기자 ar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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