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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무너지는 세운상가 생태계…서울시 뭐했나

오피니언 입력 2020-04-08 10:17 수정 2020-04-09 09:29 지혜진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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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지혜진기자] 한 나라의 수도엔 어떤 공간이 마련되어야 할까. 서울의 중심을 잠자는 곳으로 만들면 되겠냐는 한 상인의 반문에 든 생각이다. 현재 서울의 중심인 을지로 일대에는 제조업 단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1월과 3월. 철거 위기에 내몰린 을지로 세운지구 일대를 찾았다. 낡은 외관과 달리 전기차부터 인공위성까지 온갖 첨단장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4차산업 혁명 기조와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연구팀에서부터 의료기기 제작자,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많은 것이 쉽게 사라지고 대체되는 서울에서 을지로 세운지구는 장인들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장인들은 협업하며 을지로 일대를 하나의 생태계로 일궈왔다.


그 공간에서 장인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시행사는 적절한 보상을 해줬다며, 개인이 사업하다 망하면 나라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하나의 생태계가 스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기업은 자본의 논리를 따랐다 치더라도 정책은 안일했다. 많은 사람의 먹고 사는 일이 달린 일인데 지난해 갑자기 ‘세운상가 재정비 전면 검토’를 발표했다. 2017년 첫 사업시행인가가 난 뒤 2년이 지난 일이다.


기존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과감히 방향을 전환한 건 환영할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안일함은 계획의 방향을 선회한 뒤에도 이어졌다. 2019년 말 나오겠다고 한 계획은 2020년 3월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동안 상인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계속됐고, 생태계를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뒤늦게 나온 계획은 자본으로부터도, 사람으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시행사는 최근 세운지구에 조성할 공동주택을 오피스텔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10년을 내다본 사업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생긴 막대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여전히 생존권 위협을 받고 있다. 여전히 퇴거 압박을 받는 중이다. 상인들은 정부 계획이 현실화된다 해도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문제가 생길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은 고사하고 당장 임시사업장으로 삼은 컨테이너로의 이주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계획이 나온 배경에는 산업생태계에 대한 무지가 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상인, 토지주, 사업시행자, 전문가와 80차례 이상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지만, 정작 상인들은 정부 관계자를 만난 횟수를 손에 꼽는다고 말한다.


정부는 또다시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풀겠다고 한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우려는 영 근거 없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상인들 역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가든파이브 전례가 반복되는 건 아닐지,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기시감이 기우에서 멈추려면 산업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명확한 행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hey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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