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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글로벌 초격차' 삼성 일군 혁신 경영자

산업·IT 입력 2020-10-25 22:11 정훈규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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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87년 45세에 회장에 취임하며 취임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서울경제TV=정훈규기자]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87년 회장에 취임해 삼성을 아시아 변방 기업에서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장 취임 이후 병상에 눕기까지 27년만의 성과이다. 


◆ 시총 396배, 순이익 259배 UP
 

고인이 취임할 당시 10조원이었던 삼성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고,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증가했다. 2020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는 평이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으로 요약된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으며,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 회장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인재 육성과 함께 이건희 회장은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
 

이건희(왼쪽 두번째) 삼성 회장이 2010년 5월 경기 화성 삼성나노시티 캠퍼스에서 진행된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이재용(왼쪽 네번째) 부회장과 함께 기념삽을 뜨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불모지 반도체를 '글로벌 1위' 일궈

 

사업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한 전문가를 찾기는 힘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공상 같은 이야기'라며 대다수가 반대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냐”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겠다. 사재라도 보태겠다”라며 반도체 사업을 밀어 붙였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삼성 반도체’는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런 점유율의 배경에는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2007),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기술력이 밑바탕이 됐다.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반도체의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가 뒤를 이어받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한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이후 2000년 신년사에서 ‘디지털 경영’을 선언하며 새로운 천년을 내다본 이건희 회장의 안목은 ‘갤럭시 신화’의 시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왼쪽 다섯번째) 삼성 회장이 2005년 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삼성사회봉사단 등 사회공헌에도 발자취
 

이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를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업으로 여긴 것이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맹인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계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며 세계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으며, IOC 위원으로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cago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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