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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이민자, 최초의 기억] 자랑스러운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슈&피플 입력 2022-10-28 09:48:42 수정 2022-10-28 17:43:42 박진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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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미국 주류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이민자들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온 서울경제TV는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닿은 최초의 이민자 102명의 삶을 조명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추진합니다.


언론진흥기금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기획 취재는 땀과 눈물로 얼룩진 ‘코리아 디아스포라’ 한국 이민사 120년의 의미를 우리의 미래세대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맑고 드높은 하늘, 아름다운 해변, 광활한 자연 하와이는 ‘태평양의 낙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이다. 특히 북태평양 동쪽에 위치한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한국 해외 이민역사’의 모태이자 산실이 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최초의 이민자 102명이 도착한 하와이 ‘호놀룰루’는 지금도 한국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호놀룰루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를 달려가면 오아후섬 북서쪽에 위치한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은 사유지로 변해 통행이 제한되고 있지만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은 신체검사를 통과한 최초 이민자들이 일하고 생활했던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한인 캠프’를 만날 수 있다.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에서 거둔 사탕수수를 설탕으로 가공하던 ‘와이알루아 사탕수수공장’은 지금도 일부 그때 모습을 간직한 채 운영되고 있다. 비록 현재는 천연 비누공장으로 바뀌었고, 한켠에선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인 이민 1세대들의 흔적은 오아후섬 동쪽에 위치한 빅아일랜드섬 ‘힐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술국치’
하와이에 첫 발을 내딛은 한국 이민 1세대들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상실한 민족이 되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민이었지만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단 사실은 그들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기보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일제에 침탈당한 국가를 되찾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1903년 ‘신민회’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 1909년 ‘국민회’를 창립하는 등 현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와이 한인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며, 구국운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특히 존스 목사의 주선으로 하와이에 온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은 ‘와이알루아 한인감리교회’를 세우고,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를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자처했다.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조선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으며,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과 장학사업도 함께 실시했다.


이에 2011년 세워진 ‘파와아 인하공원’과 2013년 제작된 ‘미주한인 이민 110주년 기념비’는 하와이의 교육운동이 조국으로 이어진 ‘완벽한 디아스포라의 귀환’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인 최초의 하와이주 대법원장을 역임한 로널드 문,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빅아일랜드 시장을 역임한 해리 킴, 그리고 이민 1세대의 후손은 아니지만 미국 LPGA무대에서 활약한 '미쉘 위'의 성공은 인내하고 또 인내한 한인 1세대의 교육열과 희생에 기반한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민찬호를 비롯해 최근 공적이 알려진 고 김노디 지사까지 ‘한인 디아스포라’의 첫 출발점이자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쓴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은 이제 하와이 곳곳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다.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위치한 동북아평화재단을 설립한 류박우 이사장도 하와이에서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성공한 한인 이민자 중 한명이다. ‘남북한의 영세중립을 통한 통일’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는 류 이사장은 55,300평에 달하는 재단 기지를 확보하고 기금을 조성해 동북아평화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 본토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현재 하와이에는 약 5만 명의 한국계 이민자들이 중국계, 일본계와 어우러져 삶의 터전을 이루 살아가고 있다. 이런 하와이 한국 이민자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 바로 ‘한국이민사박물관’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으로 지난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 월미도에 개관했다. 해외 동포들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인천 개항장을 조국의 마지막 땅으로 밟은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금은 비록 우리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하지만 어렵고 고달펐던 시절, 이역만리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한국 이민자들은 한 세대 만에 미국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박상철 화백 作


120년 전 당시 하와이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미국내에는 아직 흑인에 대한 노예 제도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이었고 하와이에서 힘든 노동에 하루하루를 보낸 우리 선조들이지만 나름대로 가족을 이루고 궁핍한 살림속에서도 자식들을 교육시키며, 시간이 지나면서는 자영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식솔들의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 인천에서 서해 뱃길을 지나 현해탄을 건널때 그들은 반드시 성공해서 고향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이제 긴 세월을 지냈고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난의 시대와 일제강점기 치욕의 순간들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와이 곳곳에 남아있는 한인 최초 이민자들의 묘비와 흔적들을 돌아보며,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잊지 않은 이민 1세대 그 최초의 기억을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박진관 기자 nomadp@sedaily.com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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