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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못난이 감자, 정용진, 그리고 이마트 직원 급여

오피니언 입력 2019-12-18 17:06 수정 2019-12-19 08:46 문다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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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문다애 기자] “(못난이 감자를) 제값 받고 팔 수 있게 하겠다. 만약 다 팔지 못하면 내가 감자를 좋아하니 다 먹겠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요리 연구가 백종원의 전화 한 통을 받고 흔쾌히 응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덕분에 못난이 감자 30톤이 불과 며칠만에 완판됐다. 헛수고로 돌아갔을 뻔한 농민들의 땀과 노력이 제값에 팔리면서 정 부회장은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인 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됐다. 

그런데 정작 정 부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는 이마트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마트 노조는 17일부터 서울 이마트 성수본점에서 피켓 시위를 갖고 "못난이 감자를 제값 받고 판매해준 것처럼 직원도 제값 받고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이마트 직원 월급여 170만원... 최저임금 언저리 맴돌아 

노조에 따르면 이마트 직원들의  기본급은 81만2000원. 여기에 상여금을 더하면 월 170만원 가량으로 최저임금 언저리다. 직원들은 이러한 임금체계가 상여금 등의 급여를 조금이라도 더 적게 주기 위한 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마트에는 약 1만6,000여명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매장에서 노란 유니폼을 입고 계산과 진열, 판매를 담당하는 40,50대 이상의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 기본급의 정상화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에 따르면 업계 2위 홈플러스의 기본급은 176만5,000원. 이마트 81만2,000원의 두 배 이상이다. 이마트의 대형마트 1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문제는 적은 기본급 때문에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병가를 사용하면 기본급을 받게 되는데, 81만원으로는 한 달을 버틸 수가 없다는 것. 유통업계 특성상 이마트 사원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마트산업노조가 올해 9월 이마트 사원 15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업무관련 질환으로 병원진료를 받았냐는 질문에는 71%가 있다고 대답했지만, 최근 1년간 병가를 사용한 직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82%사원이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병가를 쓰는 것도 어렵다. 이마트 근로자가 병가를 쓰려면 가까운 1차 진료기관이 아닌, 초진 2만원 정도의 종합병원을 찾아야만 한다. 이마트가 지난 2016년 지정병원을 정하고 그곳의 진단서만 병가를 인정하는 제도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사원들이 병가를 악용해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들은 “십 수년간 인상된 기본급이 81만원 이라는것도 기막히고, 일하다 골병든 것도 서러운데, 꾀병부려 악용하는 직원으로 찍힐까 걱정하고 결국 아파도 참아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대형마트가 모두 이럴까. 그렇지 않다. 홈플러스의 경우 지정병원이 아닌, 전국 아무 병원에서나 “업무수행이 없렵다”만 받으면 된다.
 

이에 현재 근속 연수가 10년이 넘어가는 중년의 직원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동요해주지 않는 본사 앞에서 기본급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10년 넘게 이마트에서 근무해오며 젊음을 바쳤지만, 불합리한 임금 구조와 인력 감축 등 정작 껌 뱉듯 버리는 인사구조를 설계한 본사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 이마트 매출증가에도 직원수는 줄어... 한계 상황 내몰려 

실제로 업계 1위 이마트가 크게 성장하며 승승장구 하는 동안 직원수는 되레 줄었다. 최근 5년간 이마트가 출점한 신규 점포는 332개. 그러나 인력은 2014년 대비해 2018년 기준 212명 감소했다. 더불어 최근 몇 년 동안 이마트에서는 상시인력인 무기계약직 사원을 신규출점 점포 외에는 거의 충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 일거리는 늘어나고 인력은 감소하는 상황이 지속되며 직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현장에는 사측을 대변할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내려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다들 남의 일이라는 듯 흘끔거리며 지나가기 급급했다. 현장 노동자의 임금 체계가, 인력감축 대상이 전체로 확대된다면, 정작 자신의 차례가 된다면, 같은 태도일 수 있을까. 현장 노동자들의 피켓이 무색하기 그지 없었다. 더 아쉬운 점은 이마트 사측의 태도다. 이마트는 근로자들의 주장에 대해 공식 입장으로 “이들의 연소득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금액은 연 2400만원. 결국 마트 노동자는 이 정도 대우만 받아도 충분하다는 말 아닌가. 현장 노동자의 가치를 월 200만원에 재단한 거 같아 씁쓸하다.
 

상생. 최근 정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 실제로 전통시장 내 노브랜드 전문점을 입점시켜 상생을 도모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이마트다. 그런데 정작 이마트 직원들은 “직원들의 처우엔 관심 없는 회사가 과연 상생을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상생의 정의는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다.
 

불과 전화 한 통에 판매된 감자 30톤. 1만명 직원들의 호소는 10년째 전해지지 않고 있다. /문다애기자 da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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