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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전 日공사 암살 계획' 실패 주범 '밀정 실상' 드러나

전국 입력 2023-04-05 11:35 신홍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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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팩트만 "밀정은 우리안에 있었다"…역사적 사실 교차해 접근

거사 12일전 밀정, 암살실행팀 2명과 만난 시점이 '공작 출발점'

유튜브 채널 '밀정의 정체를 밝혀라' 메인 화면. [사진=역사팩트만 캡쳐]

[서울경제TV=신홍관 기자] 1933년 중국 상하이 주중 일본공사에 대한 독립운동가의 암살계획, 이른바 '6·3정 사건'의 일본 내사 보고서 일체가 전격 공개된 가운데, 당시 거사 실패의 직접적 요인인 밀정의 존재가 확인됐다.


'6·3정 사건' 거사 계획의 실패 이유로 밀정을 꼽은 것은 지금까지 가설로 남았지만, 일본 경찰의 밀정 운용으로 거사가 실패하면서 흑색공포단 해체까지 이어진 생생한 과정이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90년만에 처음이다.


유튜브 채널 '역사팩트만'은 '무정부주의불령선인의 유길공사 암살음모사건'이란 타이틀로 28페이지 분량의 '일본 내사 보고서 당일 수사기록' 전부를 1부 영상을 통해 최초 공개한 데 이어 2부에서 ‘밀정은 우리안에 있었다’란 제목으로 밀정의 존재를 접근해 갔다. 


역사팩트만은 밀정을 추적하기 위해 이번에 공개한 수사기록뿐 아니라 '재천진총영사관저 투탄 및 아리요시공사 암살음모사건'이란 전체수사기록까지 모두를 분석해 추론해 냈다. 아울러 정화암, 이강훈 등 회고록과 전체수사기록상에 나타난 사람들을 우선으로 당시 흑색공포단 관계자를 망라한 사람에 대한 의문점과 알리바이를 확인하면서 밀정을 압축해 갔다.

역사팩트만은 "28페이지의 세세한 수사기록에 밀정이란 단어가 34번이나 나오지만 밀정이 누구냐 하는 단서는 정작 은폐돼 있다. 마찬가지로 검거 10일 후,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서 작성돼 외무성에 보고된 종합보고서에도 밀정의 신분은 숨겨져 있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역사팩트만은 그렇다고 밀정의 존재 찾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모든 관련 자료와 당시 현장 상황을 종합하고 당사자들이 남긴 회고록을 통해 교차 확인함으로써 밀정을 추적해 나갔다.

그 결과 역사팩트만은 밀정이 원심창과 이규창을 처음 만난 시점을 거사 계획 12일전인 3월5일 2시로 특정했고, 밀정 공작의 출발점은 이 세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단정했다. 첫 만남 이후 밀정의 카운터파트너는 계속 원심창이 되지만 함께 만난 이규창은 그 후 수사기록에서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는다. 

역사팩트만은 "원심창은 밀정의 카운터파트너로서 암살실행팀의 주도자였고 의논된 내부 비밀이 그를 통해 상당히 누설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바로 밀정이란 직접적 단서는 오히려 없는 편이다"라면서도 "밀정을 믿고 내부정보를 누설한 당사자로서 책임은 분명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반면 "백정기와 이강훈을 밀정으로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 두 사람은 암살 지원자로서 성실하게 실행만을 생각하고 행동했고 모든 수사기록도 이 둘을 실제 집행자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검거된 후 일주일만에 당시 경찰서장 대리의 편지 내용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새로 발굴된 내부보고 기록에 따르면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인이 그 그룹 안에 있다는 것을 탐지하여 야마다 순사를 지휘, 독려해 내사를 진행했는데 점차 그 일본인을 우리 지배권 안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박찬승 교수는 밀정은 일본인 오키(冲)라고 말하고 있다. 박 교수는 "밀정 오키가 한 것을 야타베가 실행한 것으로 둔갑시켜 종합보고서에 기술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오키라는 전직 일본 신문사 기자로서 아나키스트라고 말한 밀정이 따로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흑색공포단 암살실행자들의 체포당시 배치도. [사진=역사팩트만 캡쳐]

이에 대해 역사팩트만은 "그가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밀정의 이름이 오키라는 자료와 내부에 일본인이 있어 그를 활용했다는 자료가 지금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 그룹 내부의 일본인 밀정이 오키인지 야타베인지도 불확실하다"면서 다시금 상황을 좁혀갔다.


이 거사 실패의 요인으로 밀정 오키를 거론하는 또 다른 사람의 주장을 소개했다. 거사 현장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많은 친일파 처단을 계획하고 집행했다는 정화암의 회고를 근거로 들고 있다.


역사팩트만은 "정화암은 이번 거사의 실패 요인이 밀정에 의한 것이었고 그 밀정이 통신사에 다니는 일본인 ‘오키’라고 최초로 밝힌 점"이라며 오키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역사팩트만은 특히 오키가 밀정일 것이란 사실을 해당 기록을 발굴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자료조사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역사팩트만은 "자료조사원들이 자료를 분석한 후 입을 모아 오키는 조선인이라 했고, 내용에서 '예의 오키'란 영사관 경찰이 내부에 심어놓은 조선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밀정을 알았거나 분명 감지한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은 공판 진행과정에서도 아무 말도 남기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아쉬워 했다.
 

역사팩트만은 "운명의 날인 3월17일, 폭탄이 들어있는 과자뭉치 같은 것을 옆에 끼고 원심창이 백정기와 같이 대기장소인 송강춘 2층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순간 사에키 경시, 후지이 경부보 등 영사관원 10여명과 영국경찰 수명이 고함을 치며 총을 들이대 할 수 없이 체포되고 말았다"며 거사 실패의 순간을 전했다.

역사팩트만은 "밀정이 눈앞에 보이는 적 10만 대군보다 무섭다. 그 단단했던 조직은 이미 파괴되어버리고, 아직까지도 밀정이 누군지 몰라 당시 참여했던 모든 독립운동가들을 서로 의심해야 하는 처지다"라며 "아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 후 조직을 재건하는데 함께 일하기를 꺼려했고, 그 후 남화한인청년동맹, 항일구국연맹, 흑색공포단은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지고 말았다"며 흐느꼈다. /hknew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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