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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권총, 이토 후손 집에 있다?"…행방 최초 공개

전국 입력 2023-06-20 09:40 신홍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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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채널 역사팩트만, 20여년 전 이토 집 방문때 기억속

이토 집 관계자 "가장 중요하고 불길한 물건 구두 박스 보관"

역사팩트만 "유해와 함께 안중근 권총도 고국으로 돌아와야"

역사팩트만 '안중근 권총의 행방' 영상 캡쳐.

[서울경제TV=신홍관 기자]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한 후 일본 현지는 물론 세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고, 그의 죽음은 이후에 더욱 온갖 음모설로 혼란에 빠져들게 했다. 우선 일제는 그의 암살 배후로 고종을 염두에 두고 국내와 연해주 모든 곳을 추적했고, 러시아 개입이 분명하다는 음모설까지 제기했다. 


여기에 안중근이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십자 총알’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안중근을 무도한 살인자로 몰아가려 한 것도 당시 또 하나의 이슈였다.


이런 가운데 안중근 의사가 당대 개국공신 중 한 명이자 정치 거물을 저격에 성공케 한 권총 ‘브라우닝 M1900’에도 거사 115년을 맞는 시점에 시선이 쏠린다. 더 구체적으로는 강철제 총, 브라우닝 M1900(존 모지스 브라우닝 제작), 총번호 262336.


유튜브 채널 ‘역사팩트만’은 최근 보도한 기획물에서 안중근이 당시 사용한 권총이 있는 곳을 특정하고 있어 학계는 물론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팩트만은 ‘안중근 권총이 왜, 거기에 권총 행방 최초 공개’란 제목의 영상물에서 “안중근의 총은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 장남의 후손 집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이토 히로부미 장남 후손의 집은 최초의 막부시대가 탄생된 가마쿠리시라는 곳에 있고, 그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 장남의 후손 이토 히로쿠니(伊藤博邦)라고 역사팩트만은 소개하고 있다.


이토 히로쿠니는 이토가 사망했을 때 일본 황실 혼례품 구입을 위해 유럽에 파견된 상황에서 급히 소환돼 장례식에 참석했던 맏상주라는 사실도 설명했다. 


특히 이곳 후손의 집에는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할 당시의 현장 영상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단정하면서 안중근 권총도 이곳이 있을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 같은 사실은 역사팩트만 작가가 20여년 전 권총 행방의 시선을 재판부로 돌렸지만, 원본을 찾지 못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 등 당시 재판기록과 압수품들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정황을 포착했고, 그 사실을 최근 한일 관계에 맞춰 보도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아주 절묘한 곳에 안중근의 총이 보관돼 있다'는 뜻밖의 제보를 받게 된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 전문가인 일본인과 작가 팀은 도쿄에서 1시간 거리의 가마쿠라시를 향했고, 그곳에서 만난 노인으로부터 권총 행방을 암시하는 말을 건네 듣기에 이른다.


당시 그 노인은 일본인 전문가와 대화중 “가장 중요한 물건, 이토 공작을 직접 사망케 한 총이라고 특별히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무언가 불길한 물건이라 생각하고 종이로 된 구두 박스에 넣어 뒀는데, 당시 대동아전쟁 말기 도쿄공습때 집이 불타면서 그 총도 녹아서 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는 답을 얻었다.


이어 “그 철덩어리가 되어버린 그것이라도 보여주실 수 있느냐”라는 작가측 질문에 “지금 어디에 뒀는지 모른다”면서 “지금 일-한관계로 보아 아직 내놓을 때가 아니다”라며 단서를 달기도 했다.


그러자 작가는 당시 한일 관계상 안중근 권총이 양국의 역사적 화해무드를 만들어 줄 가장 중요한 상징이란 간곡한 설명과 차후에라도 총을 찾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장면이 권총에 가장 근접한 상황이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결국 안중근 권총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다시 20여년이 흐른 것이다.


역사팩트만 작가는 현재 안중근 기념관에 있는 관련 사진도 이토의 집안에서 기증한 것이란 판단에 권총도 현재까지 이토 히로쿠니 집안에 전리품처럼 보관돼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면서 역사팩트만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하고 순국한 지 어언 115년이나 지났다. 이제는 찾지 못한 유해와 함께 안중근의 권총도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안중근의 권총은 단지 하나의 총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응징하고 동양평화를 지키고자 한 대한국의병중장의 떳떳한 행동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라며 당위성도 내세웠다.

 

그는 또한 “이토 히로쿠니 집안 노인의 말대로 그 권총이 녹아 철 덩어리가 돼버렸다 해도 이토의 가슴을 겨눴던, 안중근의 맥박이 스며있을 방아쇠의 흔적만이라도 돌아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작가는 이어 “안중근의 총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자 당시 세계정세를 규정하는 상징물이고, 불편한 한일관계 시작의 원형이며 두 나라의 맺힌 매듭이다”라며 “당연히 우리가 그 총의 환국을 위해 계속 추적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최소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의무다”라고 사명감을 가졌다.


권총의 행방과는 달리 안중근이 썼던 총알 실물은 현재 한 개가 일본 헌정기념관에 있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거사에 사용된 안중근의 권총 약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발이다.


작가는 “거사 중 이토와 동행했던 자들에게 쏘았으나 빗맞은 네 발은 찾지 못했고 이토를 명중시켰던 세 발은 이토의 가슴을 파고들어 아직도 이토의 목숨을 붙들고 무덤에 함께 있다. 만약 일본 극우들이 음모설을 확인하려면 바로 이토의 무덤을 파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팩트만은 ▲하얼빈의거, 안중근 거사자금의 진짜 배후 ▲안중근과 단지동맹의 진짜 이야기 등 근대현대사와 관련된 수십편의 비사 자료를 최근 쏟아내고 있다. /hknew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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